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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선종"이라는 이름의 특권: 교황의 죽음과 언론의 종교 편향

2025년 5월 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을 떠났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그의 죽음을 보도하며 일제히 ‘선종(善終)’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얼핏 보면 경건한 존중의 표현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세속 언론이 이 용어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써도 되는 걸까?

21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민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망 소식을 애도하며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 앞 교황 사진 앞에 촛불을 놓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

‘선종’이라는 말은 단순히 “편안히 숨을 거뒀다”는 뜻이 아니다. 가톨릭 교리상 선종은 임종 직전에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고, 영혼에 대죄가 없는 상태로 삶을 마쳤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모든 종교적 의무를 마친 상태에서 하느님 앞에 떳떳하게 떠났다는 확신이 담긴 표현이다. 그것은 특정 종교의 구원관이 반영된 신앙적 선언이며, 중립적인 서술이 아니다.

세속 언론이 이러한 종교 내부 용어를 아무 설명 없이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사실을 보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종교의 교리적 해석을 마치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적 사실인 양 슬쩍 끼워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종’이라고 적는 순간, 언론은 가톨릭 교회의 신앙적 관점을 객관적 진실처럼 포장하게 된다. 이는 언어를 통해 특정 종교의 특권을 재생산하는 행위이며, 언론의 보편성과 중립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교황의 죽음이라고 해서 죽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교황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언론이 그의 죽음을 ‘선종’ 같은 용어로 미화하는 것은 죽음의 현실을 종교적 미사여구로 가리는 일에 불과하다. 아무리 존경받는 인물일지라도 죽음은 죽음이다. 이를 특별한 성스러운 사건처럼 포장하는 것은 진실을 흐리는 것이며,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일 뿐이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언어적 위선이다. 겉으로는 객관적 보도를 표방하면서도, 종교 권위 앞에서는 그들의 언어를 빌려 쓰며 스스로 무릎을 꿇는다. ‘선종’이라는 표현 역시 다르지 않다.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말일지 모르나, 공적인 뉴스 기사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순간, 언론은 가톨릭 교회의 홍보지를 자처하는 꼴이 된다.

물론 언론이 교황에 대한 존경과 애도의 뜻을 담고자 했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적인 보도 언어까지 종교에 기대서는 안 된다. 존경하는 인물의 죽음을 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완곡하고 품위 있는 단어는 충분히 존재한다. ‘서거’나 ‘별세’ 같은 표현만으로도 애도의 뜻을 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굳이 “하느님 나라로 귀환했다”는 식의 종교적 확언을 빌리지 않아도 말이다.

세속 국가의 언론이라면 공적인 언어에서는 엄격히 세속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종교를 존중하되, 언어의 영역에서는 그 어떤 종교에도 특혜를 주어선 안 된다.

교황은 결국 한 인간으로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언론은 그 사실을 담담히 전하면 그뿐이다. 굳이 신의 축복을 받은 듯 미화할 필요도, 교회 권위에 기대어 특별 대접할 이유도 없다.

언론은 진실을 전하는 기관이지, 종교 권위에 맹종하는 전령이 아니다. ‘선종’이라는 말 한마디에 스며든 권력과 신앙의 냄새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이러한 행태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그 누구의 죽음 앞에서도 오직 사실과 세속적 언어로 말해야 한다.
그것이 독자와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요, 언론 스스로의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