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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뒤에 숨은 가톨릭, 아일랜드 미혼모 시설 비극 앞에서도 책임 회피인가

아일랜드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비극으로 꼽히는 ‘미혼모 보호 시설’ 인권 침해 사건을 둘러싸고, 최근 가톨릭교회가 보여주는 태도는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배상 기금을 마련하는 엄숙한 과정 앞에서, 가톨릭 수장인 에이먼 마틴 대주교가 꺼내 든 언어는 교회가 가진 도덕적 바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교회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고 무릎을 꿇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또다시 ‘억울하게 표적이 되었다’는 식의 프레임을 짜며 역사적 책임 앞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미혼모 보호시설 막달레나 세탁소, 20세기  초경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8개 단체 중 단 3곳만 참여… 자산 압류는 교회가 자초한 ‘마지막 수단’이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시설들은 과거 지방 의회뿐만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 그리고 여러 종교 및 복음주의 단체들이 촘촘하게 얽혀 운영에 관여했던 곳들입니다. 신의 사랑을 말하던 그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수많은 여성과 아동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보장받지 못한 채 학대와 통제, 그리고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생존자들을 위한 보상과 배상 계획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가해의 한 축이었던 종교 단체들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실제로 시설 운영에 관여했던 8개의 주요 종교 단체 가운데, 피해자 배상 계획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나선 곳은 고작 3곳에 불과합니다. 절반이 넘는 단체들이 책임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자, 아일랜드 아동부 장관은 종교 단체들에게 기부금 납부를 강제할 수 있는지 법률 자문을 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수도회나 교회의 자산을 압류해서라도 배상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입니다. 자산 압류라는 극약처방은 갑자기 등장한 급진적인 발상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야 할 자발적 책임을 끝까지 거부해 온 종교 단체들이 스스로 자초한 압박 카드인 것입니다.


국가도 잘못했는데 왜 우리만?” 대주교의 뻔뻔한 핑계와 책임 희석

상황이 이런데도 가톨릭 수장인 에이먼 마틴 대주교는 이 정당한 압박을 두고 “정치적 기회주의”라는 오만한 표현을 사용하며 날을 세웠습니다. 그는 국가와 세속 기관들 역시 해당 시설에 대한 관리 권한과 감독 의무를 가졌으므로 책임이 공정하게 나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종교 단체라는 이유로 자산 문제에서 부당하게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적 기회주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대주교 발언의 본질은 명확하고 치졸합니다. 교회가 잘못이 전혀 없다는 말은 차마 양심상 못 하겠으니, 국가의 잘못을 물타기 삼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을 분산시키겠다는 얄팍한 계산입니다. 쉽게 말해, “국가도 함께 책임져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인데, 왜 교회만의 문제처럼 몰아가며 우리를 희생양으로 만드느냐”는 뻔뻔한 핑계입니다.


야당의 일침, “피해자 코스프레로 본질을 흐리지 말라”

하지만 신페인당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아일랜드 야당 정치인들은 이러한 교회의 비겁한 변명을 단호하게 걷어찼습니다. 야당은 “정치적 기회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야비한 프레임 전환이라고 보았습니다. 지금의 쟁점은 교회가 억울하게 표적이 되었느냐가 아니라, 종교 단체가 과거에 저지른 죄악에 대해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실제로 과거의 비극에 어떤 책임을 졌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교회가 자신들의 과오를 덮으려는 그 어떤 정치적 기회주의적 견해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 - 신페인당 대변인

사회민주당 역시 지금 필요한 것은 교회의 구차한 변명이나 책임 은폐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향한 실질적인 조치뿐이라고 맞섰습니다. 나아가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는다면 수도회 소유의 자산을 강제로 압류하는 방안까지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습니다. 야당의 이러한 반응은 정치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교회가 또다시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가짜 피해자 서사를 만들어 논점을 돌리려 한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본 당연한 일침입니다.


명예 보호와 법적 방어막 뒤에 숨어온 교회의 이기적 민낯

가톨릭교회가 자신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주장할 때, 대중이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학대나 인권 침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 단체들이 보여온 행태가 너무나도 이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진정성 있는 책임 인정이나 투명한 기록 공개, 그리고 재산 출연보다는 조직의 명예 보호와 법적 방어벽을 세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8개 단체 중 단 3곳만 배상에 참여했다는 한심한 지표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국가도 책임이 있다”는 대주교의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 오직 자신들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치졸한 방어 논리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돈의 계산보다 ‘책임의 순서’가 먼저… 배상은 고통의 공식적 인정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세금을 누가 얼마씩 나눠 낼지 계산하는 법률 기술이나 재정 분담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책임의 순서’입니다. 누가 얼마를 부담할 것인지 주머니 사정을 계산하기 전에, 각 기관이 과거 역사 속에서 어떤 잔인한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오랜 침묵과 외면 끝에 마침내 자신들의 고통과 가해자의 죄가 공식화되는 엄숙한 역사적 과정입니다. 종교 단체가 이 엄숙한 요구에 충분히 응하지 않는다면, 자산 압류 같은 강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당연한 정의의 흐름입니다.

국가의 책임을 함께 묻는 것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공적 기관과 제도의 묵인 속에서 시설들이 운영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 책임을 언급하는 교회의 언어가 보상의 범위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직접적인 책임을 흐리는 방패로 쓰이는 순간 대중의 반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분산이 아니라, 각 주체가 자기 몫의 죄과를 회피하지 않는 일입니다.


결론: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가면을 벗고 역사적 통첩에 응하라

자산 압류는 분명 강한 조치이며, 종교 단체 입장에서는 재산권 침해나 표적 규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자발적인 책임 이행이 없었고, 기여마저 미흡하다면 결국 국가가 강제 장치를 논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논리 속에서 자산 압류는 종교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피해 구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법이 행사해야 하는 ‘현실적인 마지막 수단’인 것입니다.

이번 논란은 종교 단체가 과거의 중대한 인권 침해 범죄 앞에서 얼마나 비겁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입니다. 가톨릭은 더 이상 '공정한 책임 분담'과 '희생양'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역사를 모독하고 피해자들을 기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적 책임 앞에서 교회가 또다시 방어 논리를 택하는 순간, 종교가 가진 도덕적 권위는 스스로 시궁창에 버려지는 것임을 가톨릭교회는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