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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21kg 코카인과 강단의 설교: 카라카스 ‘마약 신부’ 사건의 진실

마이케티아 국제공항에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르려던 한 가톨릭 신부가 체포 (이미지출처-https://x.com/AxiomaReport/status/1784589050566807813)

■ 1988년 4월, 카라카스 공항에서 벌어진 일

1988년 4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마이케티아 국제공항에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르려던 한 가톨릭 신부가 체포됐다.

스페인 출신의 José Luis Gil Fernández.
그의 가방에서는 코카인 약 21kg(46파운드)이 발견됐다.

성직자가 거액의 마약을 해외로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것이다. 당시 남미에서는 장성, 국회의원, 판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마약 범죄로 잇달아 체포되고 있었지만, 신부가 직접 21kg이나 되는 코카인을 운반했다는 사실은 그중에서도 단연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었다. 수사 결과, 그는 콜롬비아산 코카인을 베네수엘라를 거쳐 유럽으로 운송하는 국제 밀매 조직의 일원이었다.

1980년대 중반, 베네수엘라는 마약 중계지로 악용되고 있었다. 연간 4톤이던 통과 코카인이 15톤까지 급증할 정도였다. 그 한복판에 가톨릭 성직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회와 교회 모두에 큰 수치를 안겼다.


■ 조직 범죄로 드러난 실체

당국은 1년 전부터 그의 행적을 내사하고 있었다.
체포와 동시에 그를 끌어들인 전직 신부 Juan Rojano, 그의 아내, 그리고 다른 공범들까지 함께 검거됐다.

이 사건은 더 이상 “한 신부의 실수”가 아니었다.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국제 마약 밀수였다.


■ “속았다”는 변명, 그리고 드러난 위선

체포 후 힐 페르난데스 신부는 눈물을 흘리며 진술했다.

“1년 전 한 전직 신부에게 속아 처음 마약을 운반하게 되었고, 그 후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이어왔다.”

그는 크루즈 여행 중 알게 된 전직 성직자의 부탁으로 “짐 한 꾸러미”를 유럽으로 옮겼고, 나중에야 그 안에 코카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폭로하겠다는 협박 때문에 계속 운반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실제로 그는

  • 첫 운반에서 9kg을 날라 9,000달러를 받았고
  • 두 번째로 14kg을 운반해 32,000달러를 받았다

총 약 4만 1천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그 돈 대부분을 “산마테오 빈민가 예배당 신축과 교회 부채 상환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변명들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냈다.

▣ 속았다?

처음에 속았다고 해도, 이후 여러 차례 거액을 받고 운반한 것은 명백한 자발적 범죄다.

▣ 협박?

협박을 받았다면 당국이나 교회에 알릴 수도 있었다. 그는 범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가담했다.

▣ 교회를 위해 썼다?

마약 돈으로 예배당을 지었다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더구나 지역 행정관 질베르토 카스트로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의 고해를 믿을 수 없다. 교회에 무선 전화며 컬러 TV까지 사들이고 사치를 부렸는데, 이것들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나?”

실제로 그는 무전기 전화, 컬러 TV, 비디오 플레이어, 고가 음향장비 등을 구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 설교와 현실의 괴리

가장 충격적인 점은 이것이다.
그는 주말 미사에서 마약의 폐해를 꾸짖는 설교를 해왔다.

겉으로는 “마약은 악이다”라고 외치고,
뒤로는 마약을 운반해 돈을 벌었다.

이중적 행태는 단순 범죄를 넘어 종교적 배신이었다.


■ 지역 사회의 분노

산마테오 교구 신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누군가는 학교 벽에 “narco priest(마약 신부)”라고 낙서했다.

30년간 존경받던 사제가 하루아침에 마약범으로 전락했다.

현지 택시기사 기예르모 에르난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30년간 쌓아온 훌륭한 명성이 신문 한 면의 머리기사로 단 1분 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성자에서 죄인으로 추락했다.”

일부 신자들은 면회를 가며 연민을 보였지만, 범죄의 무게를 덜어줄 수는 없었다.


■ 재판과 수감

그는 보석 없이 구금되었고, 재판 끝에 마약 밀매 유죄가 인정됐다.
형량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1kg이라는 규모를 고려하면 중형이 불가피했다.

그는 사제직에서 배제되었고, 산마테오 교구와도 완전히 격리됐다.


■ 1993년, 뜻밖의 사면

그러나 1993년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Carlos Andrés Pérez**가 임기 말 특별 사면을 단행하며 그를 석방한 것이다.

약 5년 복역 후 자유의 몸이 됐다.

이 사면은 “지나치게 관대한 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임기 말 정치적 계산, 교회의 영향력 행사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는 자유를 얻었지만, 사제직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베네수엘라 교회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사건 중 하나로 남았다.


■ 종교의 이름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성직자의 권위와 신뢰가 범죄에 사용된 사례다.

마약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 유통에 종교인이 가담했다는 사실은 신앙 공동체 전체에 상처를 남긴다.

어떤 명분도, 어떤 눈물도, 어떤 “교회를 위한 돈”이라는 주장도
21kg의 코카인을 정당화할 수 없다.

종교가 사회에 신뢰를 요구하려면,
그 내부부터 엄격한 도덕 기준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