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바티칸 시노드홀. 새로 즉위한 레오 14세 교황이 추기경단 앞에서 첫 공식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AI)을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교황 취임 직후부터 AI를 교회의 핵심 의제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다. 교황은 “AI로 인해 인간 존엄성과 정의, 노동의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AI 시대에 교회가 인간 존엄과 정의, 노동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 이름을 ‘레오’로 정한 이유도 130여 년 전 산업혁명 시기 노동 문제에 대응했던 레오 13세의 사회교리를 디지털 시대까지 잇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다. 그의 AI 담론은 깊이 있는 분석이라기보다, 두려움과 경고를 반복하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에 가깝다.
“AI는 인간을 대체해선 안 된다”는 공허한 반복
레오 14세 교황은 정치 지도자들 앞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도구이며, 인간을 감소시키거나 대체해서는 안 된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구체적 근거는 없다. 누가 “AI가 인간 자체를 대체해도 된다”고 주장했는가? 과학자들과 기업들은 AI가 인간을 없애려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적 업무를 줄이고 과학 연구를 돕고, 의료와 교육을 발전시키는 도구로 설명한다.
그런데 교황은 긍정적 가능성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AI에는 영혼도 없고 고정된 기억력만 있을 뿐”이라며 인간 지성과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 “우리 각자의 삶은 어떤 알고리즘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인간의 존엄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말은 이미 모두가 아는 원칙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가 실제로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생겨나는지, 교회는 어떤 교육적 대안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제안은 없다. 반복되는 경구만 있을 뿐이다.
기술 발전을 곧 신앙 위기로 몰아가는 논리
더 심각한 부분은 기술 발전을 신앙 약화와 연결 짓는 태도다. 교황은 디지털 혁신 시대를 두고 “기술은 발전해도 인간성은 빈곤해지는 시대”라고 말했다. 또 인간이 AI에 현혹되어 “마치 하나님 없이도 전능한 존재인 양 착각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교황의 논조에는 현대 과학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마치 과학이 발전하면 신앙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는 역사 속 가톨릭 교회의 어두운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교회가 과학을 경계하고 새로운 발견을 억압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AI를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합리적 토론과 데이터 분석 대신, “믿음이 없으면 기술이 위험하다”는 막연한 공포가 앞선다.
딥페이크에 대한 과민 반응

AI 논란에서 바티칸의 태도는 종종 과장되어 보인다. 대표적 사례가 딥페이크 문제다.
2023년, 인터넷에는 교황이 명품 패딩을 입은 사진이 유행했다. 이른바 ‘발렌시아가 교황’ 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를 두고 “가공된 이미지가 현실과의 관계를 왜곡한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딥페이크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장의 합성 사진이 곧 신앙 붕괴로 이어질 것처럼 반응하는 태도는 과민하다. 문제를 차분히 설명하기보다, 기술 자체를 위협으로 규정하는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
2024년 ‘AI 사제’ 논란과 과도한 공포

2024년 미국에서는 가톨릭 관련 단체가 신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AI 챗봇 ‘저스틴 신부’를 공개했다. 화면 속 가상의 사제가 신앙 상담을 해주는 형식이었다.
곧바로 가톨릭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사제가 아닌 것이 사제 행세를 한다”는 비판이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출시 하루 만에 AI 캐릭터의 복장을 평신도로 바꾸고 ‘신부’라는 호칭을 삭제했다. 일부 사용자가 시험 삼아 AI에게 고해성사를 시도하자, 개발진은 “AI는 실제 사제를 대체할 수 없다”고 공개 해명까지 해야 했다.
스위스의 한 성당에서 진행된 ‘AI 예수’ 실험도 비슷했다. 성서 질문에 답하는 연구용 챗봇이었지만, 일부 언론은 “AI가 신의 자리를 넘본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교계 인사들 역시 “목회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며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기술을 시험하고 한계를 확인하는 과정 대신, 먼저 ‘금지’와 ‘경계’가 앞섰다. 호기심과 연구보다는 공포가 중심에 있었다.
규제만 말하는 교황, 비전은 어디에 있는가
레오 14세 교황은 여러 연설에서 “AI 결정에는 반드시 인간의 통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제사회에 AI 개발과 사용을 규제하는 조약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이러한 기조는 전임 교황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다.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규제만으로 미래를 열 수는 없다. AI를 활용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료 접근성을 높이거나, 청년 교육을 혁신하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황은 “청년 세대가 기술에 잠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그렇다면 교회는 AI를 활용해 어떻게 더 나은 교육과 소통을 할 것인지 제안해야 한다. 경고만으로는 리더십이 될 수 없다.
두려움이 아닌 이성으로
19세기 산업혁명기에 레오 13세는 노동 문제에 대응하며 사회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혁명 앞에서 레오 14세 교황의 모습은 다르다. “조심하라”, “위험하다”, “규제하라”는 말이 반복될 뿐이다.
교황청 문서에는 자주 이런 말이 등장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지금 이 격언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AI 시대를 이끌어야 할 교황이 먼저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기술은 악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만능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석이고, 금지가 아니라 방향 제시다. 레오 14세 교황이 이 전환에 실패한다면, 그는 디지털 시대에 스스로를 소외시킨 교황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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