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0일, 가톨릭 교회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페루의 가톨릭 평신도 단체 **Sodalitium Christianae Vitae(SCV)**의 해산을 공식 승인한 것이다.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던 단체가 교황령으로 완전히 해산되는 일은 거의 전례가 없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다. 성범죄, 권력 남용, 재정 비리, 조직적 은폐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끝에 내려진 단죄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지 “한 단체의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 왜 피해자들의 외침은 오랫동안 묵살되었는가. 왜 교회는 초기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정의는 25년이나 늦게 도착했는가.
이 사건은 종교 권력이 스스로를 성역화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1. 1971년 설립, 1997년 교황청 인준…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SCV는 1971년 페루 리마에서 루이스 페르난도 피가리(Luis Fernando Figari)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와 보수적 신앙을 내세워 젊은이들을 끌어모았다.
1997년,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공식 인준을 받으면서 SCV는 교회 안에서 정식 단체로 인정받았다. 이 인준은 단순한 승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교황청의 공인은 곧 권위였고, 신뢰의 보증서였다.
단체는 빠르게 성장했다. 남미와 미국까지 확장되었고, 회원 수는 약 2만 명에 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심 깊은 청년 공동체였다. 규율은 엄격했고, 복음화 열정은 강했다.
그러나 내부 구조는 극단적으로 폐쇄적이었다.
한 내부고발자는 SCV를 이렇게 표현했다.
“오로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완전히 전체주의적인 종교 조직이었다.”
피가리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인물로 군림했다. 신도들은 그에게 맹목적 복종을 요구받았다. 그를 비판하는 것은 곧 신앙을 의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피가리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연설을 찬미했고, 나치 청소년단을 모방한 규율을 도입했다. 단체는 종교 공동체라기보다 준군사 조직처럼 운영되었다.
신앙은 점점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도구로 변해갔다.
2. 성범죄와 영적 학대 – “영적 지도”라는 이름의 폭력
SCV 내부에서 벌어진 가장 충격적인 범죄는 성적 학대였다.
2015년, 전 SCV 회원 페드로 살리나스와 기자 파올라 우가스는 『반은 수도자, 반은 군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단체 내부에서 벌어진 성범죄와 폭력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한 피해자는 14세 때부터 2년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가해자는 이를 “영적 지도”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그것이 죄인지조차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를 믿었고, 그 관계를 신앙의 일부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 SCV 자체 조사 보고서는 최소 19명의 미성년자와 10명의 성인이 성적·심리적 학대를 당했다고 인정했다. 이후 추가 제보가 이어지면서 피해자는 6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구조적 문제였다.
피가리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신입 단원들을 통제했다. 죄책감과 복종을 동시에 주입했다. 피해자들은 침묵하도록 압박받았다. 내부에서는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이 곧 “영적 불순”으로 낙인찍혔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권력의 남용이었다.
3. 폭언, 구타, 굴욕… 인권을 무너뜨린 훈련
성범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SCV 내부에서는 폭언, 강압, 구타, 굴욕적 처벌이 “영적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단원들은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조직에 완전히 순응해야 했다.
개인의 존엄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신앙은 자발적 헌신이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강요된 복종이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조차 깨닫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모든 행위가 “하느님의 뜻”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종교 권위가 개인의 판단 능력을 압도할 때, 학대는 쉽게 숨겨진다.
4. 재정 비리와 세속적 탐욕
SCV는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헌금 유용, 불투명한 회계, 사업 이권 개입이 드러났다. 특히 페루 피우라 지역에서는 SCV 관련 기업들이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허위 고소와 폭력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종교 단체의 이름을 앞세워 사업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신앙 공동체의 외피 아래, 세속적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
5. 왜 교회는 오랫동안 침묵했는가
의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다.
2011년, 전직 단원들이 리마 대교구에 공식 신고했다.
그러나 교회는 즉각 움직이지 않았다.
2016년 교황청은 조셉 토빈 대주교를 파견했다.
2018년에는 노엘 로도뇨 주교를 커미사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개혁은 근본적이지 않았다.
2023년 7월, 교황은 말타의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와 호르디 베르토메우 신부를 파견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조직 구조를 조사했다.
보고서는 SCV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 가까운 가학적 권위 남용과 영적 학대”
이제 더 이상 부분 개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2024년, 피가리와 핵심 책임자 10여 명이 축출되었다.
그리고 2025년 1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산을 승인했다.
첫 고발 이후 2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6. 피해자들의 외침 – “눈을 감아버렸다”
페드로 살리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페루의 교회 기관들과 주교들 상당수가 이번 사태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초기 제보는 묵살되었다. 내부고발자들은 압박을 받았다. 일부 인사는 기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2017년 교황청의 첫 조치는 피가리를 로마에 머물게 하고 SCV와 접촉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출교도, 공식 재판도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정의는 결국 실행되었지만, 그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7. 권력의 성역화가 만든 구조적 문제
SCV는 교황청 인준 단체였다. 그 사실은 오랫동안 방패가 되었다.
교회 내부에서는 성직자의 말이 평신도의 말보다 더 신뢰받는 문화가 존재했다. 체면과 권위를 지키려는 논리는 외부 비판을 차단했다.
종교 권력이 스스로를 성역화할 때, 책임은 지연된다.
SCV 사건은 그것을 보여준다.
8. 남은 과제
이번 해산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종교는 비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권위는 면죄부가 아니다.
신앙은 폭력의 이유가 될 수 없다.
25년의 지연은 피해자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SCV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권력은 누구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가.
종교는 스스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SCV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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