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영국 사회는 다시 한 번 종교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확인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아동 학대 사건이 독립 조사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드러났고, 결국 영국 국교회 수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건의 중심에는 영국 성공회, 즉 **Church of England**와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Justin Welby**가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1970~80년대부터 이어진 연쇄 아동 학대, 그리고 이를 알고도 덮어버린 조직적 은폐가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이다.

1970~80년대, 시작된 학대
가해자는 변호사 출신 평신도 지도자 존 스미스(John Smyth)였다. 그는 1970년대부터 영국의 기독교 캠프에서 청소년 지도자로 활동하며 신앙과 훈련을 강조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그는 소년들에게 신체적·성적 폭력을 가했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약 30여 명, 아프리카에서는 80여 명 이상의 소년들이 피해를 입었다. 일부 피해자는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문제는 교회가 이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82년, 이미 알고 있었다
2024년 공개된 251쪽 분량의 Makin 독립조사 보고서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성공회 지도부는 1982년 내부 조사를 통해 스미스의 영국 내 학대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 스미스에게 조용히 영국을 떠날 것을 권고했다.
그 결과 그는 짐바브웨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같은 범죄를 반복했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옮겨 활동을 이어갔다. 2018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어떠한 형사 처벌도 받지 않았다.
교회가 초기에 법적 조치를 취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피해가 대륙을 넘어 40년 가까이 이어진 셈이다.
1992년 짐바브웨 사건
1992년 짐바브웨의 한 캠프에서 16세 소년 가이드 냐추루가 의문의 익사 사고로 사망했다. 스미스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무혐의로 끝났다.
그 이후에도 교회 차원의 단호한 조치는 없었다. 침묵은 계속되었고, 피해는 반복되었다.
2013년, 또 한 번의 기회
사건의 또 다른 중대한 전환점은 2013년이었다. Justin Welby 대주교는 그해 초 스미스의 학대 의혹을 보고받았다.
그는 “이미 경찰이 조사 중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독립 조사 결과는 분명했다. 만약 2013년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면 이후 발생한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의는 11년이나 늦어졌다.
2024년 11월, 웰비 대주교는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사임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오랜 기간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재차 안긴 데 대해 개인적, 제도적 책임을 통감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2017년 폭로, 그러나 가해자는 사망
스미스의 범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17년 영국 채널4의 탐사 보도를 통해서였다. 그제서야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스미스는 조사 직전 사망했다.
그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 형사적 책임은 끝내 묻지 못했다.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 교회 문화
2022년 영국 정부 산하 독립 아동성학대 조사위원회(IICSA)는 성공회 내부 문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성직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가해자를 보호하는 조직 문화가 교회를 “가해자들이 숨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 역시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성직자의 체면과 교단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문제를 덮었고, 그 결과 더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입었다.
한 성공회 주교는 웰비의 사임이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교회 내 책임 부재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도덕적 실패였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충격
웰비의 사임은 전 세계 85개국, 약 8천5백만 명이 속한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나이지리아 등 국제 갈등 조정에도 힘써온 중도적 지도자였지만, 여성 성직 문제와 교단 내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터진 이번 은폐 스캔들은 그의 도덕적 권위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영국 교계와 여론은 “더 이상 피해자의 절규에 귀닫고 가해자를 비호하는 교회 문화는 용납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피해자들은 웰비의 사임 소식에 “이제서야 교회가 변화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깊은 불신도 남아 있다.
교파를 넘어 반복되는 문제
이 사건은 특정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성범죄 사례와 마찬가지로, 종교 권위에 대한 과도한 숭배와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가 피해를 키웠다.
가해자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확산이었다.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이어진 학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종교는 사랑과 정의를 말한다. 그러나 권력이 결합되면 그 가치는 쉽게 왜곡된다. 피해자의 고통보다 조직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순간, 종교는 도덕적 권위를 잃는다.
남은 과제
웰비 사임 이후 영국 성공회는 피해자 지원 강화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신뢰 회복은 말로 되지 않는다.
과거에 귀를 닫았던 문화, 권력 남용을 방치했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같은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이 사건은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어떤 종교도 성역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의 안전보다 우선하는 명예는 없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조다.
교회가 진정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신뢰 회복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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