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범죄
1961년, 한 미국인 의사가 방글라데시 남부 말룸가트에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던 케첨.
그는 선교사이자 외과의사였다.
그는 병원을 운영하며 환자를 치료했고, 선교사 가족과 아이들을 돌보는 위치에 있었다.
겉으로 보면 헌신적인 의료 선교사였다.
하지만 이 인물은 1960년대부터 1989년까지, 무려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성범죄를 저질렀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 범죄는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았다.
조직이 알고도 막지 않았다는 점이다.

2. 조직의 구조: 폐쇄성과 권력
케첨이 속한 단체는 ABWE였다.
이 기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본부를 둔 보수 침례교 선교단체로,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견해왔다.
표면적으로는 엄격한 기독교 윤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내부는 달랐다.
- 문제를 외부에 알리지 않는 문화
- 강한 위계질서와 충성 요구
- 선교사의 명성을 보호하려는 분위기
특히 케첨은 “유능한 의사 선교사”라는 이유로 조직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이 구조는 하나의 결과를 낳았다.
범죄를 덮는 시스템.
3. 피해 규모: 드러난 것만 최소 22명
2016년 독립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케첨의 피해자는 최소 22명이다.
- 어린 소녀 18명
- 성인 여성 4명 이상
피해자 대부분은 선교사 자녀(MK)였다.
나이는 8세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다양했다.
범죄 방식은 더 충격적이다.
- “진료”를 빌미로 신체 접촉
- 불필요한 골반·가슴 검사
- 마취제(케타민) 투여 후 성폭행
이는 단순한 성범죄가 아니다.
의료 권력을 이용한 계획적 범죄였다.
4. 1989년 사건: 드러났지만 덮였다
1989년, 14세 선교사 딸이 케첨에게 성추행과 성관계 피해를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그의 범죄는 처음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조직의 대응은 명확했다.
- 경찰 신고 없음
- 외부 공개 없음
- 내부 처리
케첨은 미국으로 소환되어 조용히 해임됐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부적절한 관계였다.”
“너도 유혹에 책임이 있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거짓 자백 편지를 쓰도록 강요했다.
이건 보호가 아니다.
2차 가해다.
5. 조직적 은폐: 기록 삭제와 침묵
은폐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5년, 한 선교사가 케첨 관련 기록을 몰래 제거해 불태운 사실이 확인됐다.
그 문서에는 그의 문제 행동이 담겨 있었다.
또한 동료 선교사들은 이상한 행동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하면 조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은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범죄는 계속됐다.
6. 처벌 없는 귀환
1989년 사건 이후 케첨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이어진다.
- 의사 면허 유지
- 의료 활동 계속
- 지역 교회에서 존경받는 인물
즉, 범죄자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조직은 그를 보호했고,
사회는 진실을 알지 못했다.
7. 2011년, 피해자들의 폭로
2011년,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 피해자들이 ‘Bangladesh MKs Speak’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이 폭로는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과 교계가 뒤늦게 반응했다.
그제야 ABWE는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하지 않았다.
- 조사기관과 갈등
- 계약 해지
- 진상 규명 지연
조사기관 GRACE 대표는 이렇게 비판했다.
“조직은 아이들을 희생시키고, 평판을 지키려 했다.”
8. 2016년 보고서: 숨겨진 진실
3년간 조사,
200여 명 인터뷰,
14,000쪽 문서 검토.
그 결과 2016년 최종 보고서가 발표됐다.
결론은 명확했다.
- 지도부는 경고를 알고 있었다
- 즉시 조치하지 않았다
- 피해자를 “동의한 관계”로 몰았다
-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했다
심지어 케첨 가족의 추가 학대 정황도 확인됐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의도된 방치다.
9. 뒤늦은 사과, 그러나 늦었다
보고서 이후 ABWE는 공식 사과했다.
- 일부 지도자 해임
- 피해자 상담 지원 약속
- 아동 보호 정책 강화
하지만 이 조치는 사건 발생 후 수십 년,
폭로 후에도 5년이 지난 뒤였다.
너무 늦었다.
피해자들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론: 조직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이 사건은 묻는다.
첫째, 종교 조직은 왜 내부 문제를 숨기려 하는가?
둘째, 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는가?
셋째, 왜 ‘명예’가 ‘진실’보다 중요한가?
결국 이 사건이 보여준 것은 하나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공모다.
선교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이 구조는
종교가 권력을 가질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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