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뉴스

"침묵의 학교에서 벌어진 악몽"

청각장애 아동을 보호해야 할 곳은 왜 범죄의 현장이 되었나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충격적인 범죄

종교기관은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권위가 가장 약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탈리아 베로나의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와 이후 아르헨티나 멘도사의 같은 계열 학교에서는 충격적인 성범죄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가해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라 코라디 신부를 비롯한 여러 가톨릭 성직자들이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약 10여 명의 사제들이 두 대륙에 걸쳐 범행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2016년 아르헨티나 수사당국이 강제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미지출처- PBS news)

"침묵의 지옥"이 된 기숙학교

검찰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해 성직자들은 청각장애 아동들의 특수한 상황을 악용했다. 아이들은 듣지도 못하고 말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었다.

검찰에 따르면 일부 피해 아동들은 손발이 묶인 채 성폭행을 당했고, 피가 날 정도의 폭행과 학대가 이어진 뒤 기저귀를 채워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성직자들은 아이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수화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도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입에 손가락을 대는 "쉿" 동작을 하며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했다.

한 피해자는 나중에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성직자들이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이 말은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범죄의 가면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남았다.


가장 약한 아이들이 표적이 되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가정의 청각장애 아동들이었다.

부모들은 교회를 신뢰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맡겼다. 그러나 아이들은 오히려 가장 위험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외부와 단절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사실상 "완벽한 희생양"이 되었다.

많은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대인기피증에 시달렸으며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하거나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많았다.

일부 피해자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특히 한 피해자는 13세 때 부모에게 어렵게 학대 사실을 알렸지만 믿어주지 않았고, 결국 다시 학교로 보내졌다고 증언했다.

그 아이는 보호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교회는 왜 움직이지 않았나

더 큰 문제는 범죄 자체만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2008년부터 교구와 교황청에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다.

이탈리아의 피해자들은 2014년 직접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편지를 보내 코라디 신부 등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2015년에는 교황과 직접 만나 관련자 명단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가해 신부들은 별다른 제재 없이 활동을 계속했다.

오히려 일부는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로 이동 배치되었다.

결국 교회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경찰이 2016년 강제 수사에 나서고 나서야 범행이 중단되었다.

이 때문에 교황을 포함한 고위 성직자들이 반복적으로 경고를 받고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찰이 멈춘 범죄

2016년 체포 이후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9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니콜라 코라디 신부에게 징역 42년형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내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왜 교회가 아닌 경찰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워싱턴포스트의 조사 보도 역시 교황청이 여러 차례 경고 신호를 받았음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가 그들을 비참하게 외면했다. 교황은 들었지만 행동하지 않았고, 경찰이 응답했다."

이 발언은 오늘날까지도 교회의 성범죄 대응 실패를 상징하는 말로 인용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종교 조직의 구조적 문제가 존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직자는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쉽게 의심하지 못했다.

특히 장애 아동들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제한되어 있었고, 성직자의 권위에 저항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또한 교회는 조직의 명예를 우선시하며 가해자를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황청 중심의 중앙집권적 구조와 부족한 투명성 역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내부 비판이나 고발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장애를 가진 피해자들의 증언은 더욱 쉽게 무시되었다.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방치된 것이다.


논평

이번 사건은 단순히 몇몇 성직자의 일탈로만 보기 어렵다.

수십 년 동안 피해자들의 호소가 묵살되고, 가해자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인의 범죄를 넘어 조직의 침묵과 책임 회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든 지도자의 권위가 비판과 감시를 받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장애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기관일수록 더 강한 외부 감시와 투명한 신고 체계가 필요하다.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혀서는 안 된다.

진정한 신뢰는 권위를 요구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