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중남미 국가 Guatemala 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인물은 장군 Efraín Ríos Montt 이었다. 그는 단순한 군사 독재자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거듭난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한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고,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과 깊게 연결된 인물이었다.
당시 미국의 유명 복음주의 목사들과 기독교 우파 세력은 그를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몬트 정권은 수많은 원주민을 학살한 잔혹한 군사독재 체제였다.
이 사건은 종교가 정치 권력과 결탁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복음화된 국가를 만들겠다”던 독재자
Efraín Ríos Montt 는 집권 직전 개신교로 개종했다. 그는 미국 California 의 Church of the Word 와 연결되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국가 통치를 종교와 강하게 연결했다.
그는 매주 일요일 TV를 통해 설교와 예배 방송을 내보냈고, “성경적 가치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주장했다. 군사독재 정권이 마치 기독교 국가 건설 운동처럼 포장된 것이다.
당시 미국 복음주의 진영은 이런 모습을 적극 환영했다. 미국의 유명 방송 설교가 Pat Robertson 은 자신의 방송 프로그램 “700 Club”에서 몬트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며 축복 기도를 했다.
다른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 역시 “신실한 크리스천 지도자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다”며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전혀 달랐다.
마야 원주민 1만여 명 학살
몬트 정권은 불과 17개월 동안 끔찍한 인권 범죄를 저질렀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당시 군부는 마야 원주민 마을들을 공격해 약 1만 명 이상을 학살했고 수십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어린아이와 여성, 노인까지 희생당했다.
군인들과 무장세력은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살해하면서 “신의 이름”과 “공산주의 척결”을 외쳤다. 국제사회는 이를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했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은 가난한 마야계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반군으로 의심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 개신교 우파 지도자들은 이러한 학살 보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몬트를 감싸는 태도를 보였다. 일부는 “공산 반군 토벌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옹호했고, 어떤 인사들은 학살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개신교 정권이 만든 종교 갈등
당시 과테말라 국민 다수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몬트 정권은 개신교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며 정치와 종교를 결합했다.
군부와 가까운 일부 오순절 교회들은 특혜를 받았지만, 반대로 많은 가톨릭 신부와 교인들은 좌익으로 몰려 탄압받았다. 일부 성직자는 납치되거나 살해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종교 갈등도 심해졌다.
많은 국민들은 “기독교 신앙이 정치 선전 도구로 변질됐다”고 느끼게 되었고, 종교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특히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폭력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남겼다.
미국 복음주의 진영은 왜 침묵했나
당시 미국 보수 개신교계는 냉전 시대 반공주의에 매우 강하게 몰입해 있었다.
그 결과 “공산주의와 싸우는 세력은 선하다”는 단순한 논리로 몬트 정권을 바라보았다. 인권 문제보다 반공 이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방송인들과 텔레반젤리스트들은 막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몬트를 “기독교 영웅”처럼 소개했다. 신도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학살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종교적 보호막이 제공되었다.
1983년 몬트가 실각한 이후에도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인사들은 “우리는 몰랐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이들은 여전히 그를 옹호했다.
과테말라 내부에서도 일부 복음주의 교회들은 전범 처벌 요구에 소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진상 규명과 사회적 화해는 오랫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복음주의 독재자, 마침내 심판받다”
2013년, 과테말라 법원은 고령의 Efraín Ríos Montt 에게 집단학살 혐의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은 징역 80년이었다.
전 세계 언론은 이를 두고 “복음주의 독재자가 마침내 심판받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판결은 곧 상급법원에서 취소되었고, 재판이 다시 열리기 전 몬트는 2018년 사망했다. 결국 그는 법적으로 완전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
이후 Christianity Today 같은 개신교 매체조차 과거 미국 복음주의 진영이 몬트를 지나치게 찬양했던 사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또 미국 언론들은 Pat Robertson 의 부고 기사에서 몬트 옹호 사례를 다시 언급하며, 종교 우파가 독재 정권과 얼마나 가깝게 협력했는지를 비판했다.
“권력의 시녀가 된 교회”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독재자의 문제가 아니다.
과테말라 사례에서는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라는 종교적 논리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공산주의와 싸운다”는 이유로 폭력과 학살이 눈감아졌다.
특히 일부 개신교 세력은 과테말라를 “개신교 국가”로 바꾸려는 선교적 기대까지 품고 있었기 때문에, 몬트 같은 회심한 독재자에게 지나친 희망을 걸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신앙은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권력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교회는 독재를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라틴아메리카 교회 안에서는 “교회가 권력에 기대면 결국 폭력에 이용될 수 있다”는 반성이 커졌다. 일부 목회자들은 “차라리 박해받는 교회가 될지언정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테말라 학살 사건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종교가 정치 권력과 지나치게 가까워질 때, 과연 누가 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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